90세의 가평전투 참전 캐나다 용사와 가평의 소년 ‧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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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의 가평전투 참전 캐나다 용사와 가평의 소년 ‧ 소녀들
  • 김현중 기자
  • 승인 2021.10.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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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추보카씨 매년 가평북중에 장학금 225만원 전달
가평북중 학생들 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추보카 할아버지의 건강 회복 위한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 전개
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90세 추보카 할아버지 / 사진 = 가평군
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90세 추보카 할아버지 / 사진 = 가평군

 

지난달 29일, 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한분이 가평의 북중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현재 심경을 묘사한 시 한편을 보내왔다. 

가평군은 현재 90세의 고령으로 오랫동안 지병인 관절염을 앓고 있는 가평전투에 참전한 마이클 추보카(캐나다)씨가 멀리 바다건너 가평으로 시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추보카씨는 우크라이나 출신 캐나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8세 때 한국전쟁이 터지자 입대 원서를 제출했다. 나이가 어려 입대가 거부되었지만 나이를 한 살 올려 기어이 군대에 입대했다. 그는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여단 2대대에 배치되어 한국전에 참전했다.

운명의 가평전투! 1951년 4월 24일 마장초등학교 뒷산 677고지 캐나다군 500명 대 중공군 5,000명. 밤 10시부터 6시간 이상 피아간의 불꽃 튀는 총격전이 계속되었고 중공군은 수도 서울로 진격하려고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 그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 뿐 더 할수 있는게 없었다. 같은 참호 안의 전우가 이마에 총탄을 맞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죽어가지만 돌볼 틈도 없었다. 적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살아나기 위해 총을 쏘고 또 쏘아야만 했다. 여명과 함께 총성이 멈추고 능선에 즐비한 시신들. 치열했던 전투는 캐나다군 전사 10명, 중상 23명인 반면, 중공군 1,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북으로 퇴각하는 대승의 전과를 기록했다.

귀국 후 그는 ROTC 장교, 교사, 교장, 교육장, 교수 등 교육계에 몸담으며 5권의 저서를 남기고 90세가 될 때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 전쟁 후 매니토바주 한국전참전용사회를 조직하고 가평전투지역 근처에 있는 가평북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지금까지 매년 225만원 상당의 캐나다군 참전용사 장학금을 보내오고 있다. 이 장학금은 가평북중학교 9명의 학생들에게 25만원씩 전달되어 향학열을 북돋아주고 있다.  

90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추보카 할아버지는 관절에 극심한 통증으로 2년 전부터 캐나다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보행기에 의지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보행기에 의지해 병원생활을 하며 가평전투를 회상하며 ‘보행기’라는 시를 한편 보내왔다.  

“내 나이 90살에 최근 건강생활을 위해 우리에 갇혀 살게 되었다. 오직 보행기만이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강력한 기계 종마다. 네 개의 바퀴에 파란 철골과 부드러운 좌석의 보행기는 나에게 많은 애정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따라다니며, 내 허리 둘레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꾸짖는다. ( 후략)”

이 시와 소식을 접한 가평북중학교 학생들은 추보카 할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위해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평군은 학생들의 위문편지를 모아 10월 12일 캐나다로 보낼 계획이다. 70년 전 가평에서 맺은 혈맹의 인연이 세대를 초월하여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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