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사랑청소년봉사단에서 진행한 '경기도 역사 인물의 삶을 통해 배우는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업적 및 발자취를 친구들과 함께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건축물에는 다양한 역사가 깃들어 있었고 선조들의 모습 또한 곳곳에서 상상해볼 수 있었다.
특히 남한산성에서는 청과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안성 3.1 운동 기념관에서는 일제에 대항했던 우리 민족의 단결을, 오산세마대에서는 권율 장군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들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까지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결행이 있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고 유적지와 그에 관련한 인물들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남한산성은 매우 견고한 요새였다. 우선 험준한 형지에 있어 자연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단단한 성벽, 꼼꼼한 유지보수가 굳건한 보호를 보장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만큼 유일무이한 행궁이 있는 성으로서 왕이 긴급 대피 하더라도 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었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청군의 서양식 화포를 견뎌내고 적은 병력으로도 한 달 이상의 긴 기간동안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안성 3.1 운동 기념관은 근대의 가장 아픈 역사 시대 중 하나인 일제강점기에서 민족의 단합심이 빛났던 곳이었다.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시위가 격렬하게 번지며 이후 이 천여명의 인파들이 일본 이주민이 건설한 죽산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를 파괴했다.
그리고서 얻어진 이틀 간의 해방은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시위들 중 유일한 성공 사례로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오산 세마대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를 관할하던 권율 장군이 말을 쌀로 씻어 왜군을 물리쳤다는 데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었다.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은 마치 항아리의 모양처럼 고지에 위치해 있고 성벽을 둘러싸 적군이 침입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를 띄고 있다.
동시에 단점으로 외부로부터 자원 수급이 까다롭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왜군은 물자가 떨어질 때까지 성을 둘러싸고 포위하였는데, 이때 권율 장군이 말을 쌀로 씻는 모습을 물로 씻는 것으로 착각한 왜군은 물자가 충분한 것으로 오해해 퇴각했다.
용인 심곡서원은 조광조의 인생과 이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배우게 되는 계기로 조광조가 급진 개혁파인 걸 알고 있었으나 그 개혁들이 5년의 정치 기간동안 일으키려 했다는걸 기억하면 생각보다 더 급직전인 이상에 사람인 것 같고 사형 직전 절명시를 지으며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모슴과 달리 처음 하옥당했을 때 사림파들과 함께 옥중에서 술을 마실 때 가장 크게 울던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종 반정 이후 세력이 커진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들여온 사람파가 훈구파와 중조를 의해 밀린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조광조는 그 절명시를 적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의 행보처럼 의연하게 죽음을 마주하고 나라의 앞일을 걱정한것일까, 아니면 감옥에서 보여준 사람의 면모처럼 삶에 그리고 이나라에 미련이 남아 부디 나라의 앞길을 잘 걸어가길 빌었던 걸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산 최용신 기념관에서 영상 시청 후 강사님의 설명으로 최용신 선생님께서 본인의 평생동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교육을 해왔고,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수준을 높였다는 점을 비롯해 그분의 희생 정신과 노력하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처럼 현대의 우리나라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 감명 깊게 다가왔고 그들이 보여준 리더십을 생각하며 나 또한 철저한 판단과 근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멋진 업적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경기도의 다양한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며 역사적 지식을 늘리고 싶다.
편집/ 구성 = 김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