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시각] 영화 ‘설국열차’ 속 열차의 특성과 현대사회의 숨은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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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시각] 영화 ‘설국열차’ 속 열차의 특성과 현대사회의 숨은 계급
  • 고은솔 학생 (인천하늘고 2학년)
  • 승인 2019.09.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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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늘고 2학년 고은솔
인천하늘고 2학년 고은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기생충>으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 그의 몇 년 전 작품인 <설국열차>에 대해 글을 쓰겠다. 직접 보고 나서 이 글을 읽는 것이 훨씬 와 닿겠지만 영화의 내용을 대략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지구온난화의 해결을 위한 냉각제인 'CW-7'를 발포한 후 지구에는 빙하기 찾아오고 모든 생물은 사라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인 영화 속 인물들은 ‘윌포드’라는 열차기술자가 만든 설국열차를 탑승하게 되었고 이 열차는 전 세계를 1년에 걸쳐 횡단한다. 처음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대량의 인구가 기차에 무임승차했고 이들은 꼬리 칸인 기차 가장 끝 칸에서 살아가게 된다. 

작중에서 꼬리 칸 사람들은 ‘무임승차했지만 노동하지 않고 월포드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들’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덕분에 이들은 윌포드가 자신의 아이를 영구 동력 엔진, 즉 ‘영원하고 위대한 엔진’의 부품으로 사용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이와 헤어진다. 윌포드의 군인들은 열차 꼬리 칸에 있는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가진 식량, 생필품 등을 빼앗게 되자 꼬리 칸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량과 생필품 등을 빼앗은 이유는 바로 무임승차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설국열차의 지배층들은 무임승차한 꼬리 칸의 사람들에게 식량으로 단백질 블록이 제공하고 먹을 것이 너무 귀한 꼬리 칸에서는 단백질 블록이 마치 화폐처럼 쓰인다. 단백질 블록을 화폐처럼 쓰이는 이 장면은 원시의 인류가 생존하던 방식 (물물교환, 사냥, 규칙, 전쟁 등)을 연상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서 ‘열차’의 이미지는 수평적이었다. (아무리 역사 속에서도 계급에 따라 일등석, 이등석, 삼등석 등으로 나뉘어 탑승했었다 해도) 일자로 쭉 뻗어있는 그 모양과 철로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수평적 이미지가 느껴진다. 마지막 인류가 탑승한 이 열차는 외부의 빙하기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며 열차를 벗어나면 얼어 죽는다는 사실은 앞칸 승객부터 꼬리 칸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윌포드의 열차는 수직적인 느낌이 강하다. 윌포드는 꼬리 칸의 ‘개체 수’를 조정해 열차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본인의 사람들이 다치는 것까지 감수하고서라도 꼬리 칸의 반란을 조장한다. 아쿠아리움 칸에서 메이슨 총리가 초밥을 1년에 2번만 먹을 수 있다며 폐쇄된 열차 안에서 개체 수의 균형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꼬리 칸 사람들은 마치 초밥의 재료가 될 아쿠아리움 속 물고기들의 삶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윌포드의 생각은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꼬리 칸 사람들은 그의 아래에 있다. 

월포드의 열차에서 꼬리 칸에서 생활한 주인공 ‘커티스’가 한 칸씩 나아갈 때마다 화면에 앞칸 상류층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생활,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의 존재를 발견하는데 창문조차 없었던 꼬리 칸 사람들의 생활과 많이 대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열차의 수직성과 불공평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엔진실까지 나아간 ‘커티스’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는다. 바로 윌포드가 개발한 엔진을 물려받아 열차를 계속해서 운행하는 것. 그는 내적 갈등하며 월포드의 제안을 수락하는 듯하다가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의 딸인 ‘요나’가 가진 투시력 능력으로 발견한 엔진실 바닥에서 일하고 있던 타냐의 아들 ‘티미’를 보고는 분개한다. 열차는 영구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아이를 부품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충격과 혐오감을 느낀 ‘커티스’는 ‘요나’에게 벽을 폭파할 수 있도록 성냥을 건넨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도 그랬듯 인간이든 돼지든 다른 누군가를 지배, 통제하는 대상이 있는 한 규칙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규칙에 대해서 반발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혁명’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 혁명마저 지도자의 계획이라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 세계가 모두 한 지도자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것이고 우리는 그것에 따라 죽기도 살기도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열차의 벽을 뚫고 최종적으로 탈출한 ‘요나’와 ‘티미’는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 존재라면 훗날 다시 사람들이 모여 다른 누군가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나타나게 될지 궁금해졌다. 
한 영화에 대해 그 속의 숨은 의미를 찾고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계기가 되어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설국열차>는 내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편집 : 김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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