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우리역사를 바로 알게된 만주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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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우리역사를 바로 알게된 만주역사탐방
  • 엄민주_정천중학교
  • 승인 2015.10.0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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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압록강 단교를 통해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바깥의 상황으론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군인들이 철통수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식량부족으로 산을 거의 다 깎아 옥수수를 심어 산이 많이 비어 보였다.

가이드는 백두산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100명중 2명이 천지를 볼 수 있어서이고, 두 번째는 산의 머리 부분이 하얀 모습이어서 이다.(재미있게 하기 위한 말씀이었다). 100명중 2명이 천지를 본다 해서 그런지 백두산 천지를 못 봤다. 다행도 백두산 천지 북파 쪽에서는 볼 수 있었다. 기다린 만큼 보람이 있었다.

청산리 대첩 기념비에서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일부 문구가 왜곡되어 있었다.

“청산리대첩 80주념에 즈음하여 연변지역 각 민족 인민은 이 기념비를 세워 선렬들의 충혼을 기리고 위 위업 천추 만대에 전하노라”라고 적혀있지만 각 민족 인민이 아닌 조선족에 의해 세워졌다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3종사묘에서는 나철, 서일, 김교헌의 묘가 있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가엔 윤동주 시인이 쓴 글들이 많은 곳에 적혀져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구려 때의 귀족 무덤인데 지금은 많이 훼손이 되었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무덤 안에 사신도가 있고, 모줄임 형식의 무덤이고, 왕을 그린 것을 보아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불의 신, 해를 들고 있는 신, 달을 들고 있는 신, 농사의 신, 수레의 신 등이 있다. 많은 도굴을 당했지만 벽화라도 남아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추모왕을 비롯한 고구려 왕실 내력에 관한 이야기, 광개토대왕의 업적, 광개토대왕릉비 관리방법 등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탁본을 하면서 많이 손상되었고, 손상된 부분의 해석이 일본과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한다.

장군총은 무덤 맨 꼭대기에 장식했던 기와 조각이 무덤 주변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장수왕이라 적혀있어 이 무덤이 장수왕의 무덤이라 추측 되고 있다.

한 면에 3개의 받침돌이 있어야 되는데 다른 면에는 받침돌 1개가 없어 자갈이 빠져 나왔다. 또 도굴꾼들에 의해 왕의 관이 노출되었다.

환도산성은 자연 자체가 요새가 되고, 수도로 적합하고, 잉어를 던져 식량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 적을 물러나게 했다. 또 문이 두 개 있는데 1개를 열어 유인한 후 어느 정도 들어오면 그 문을 닫아 적을 처단했다고 한다.

호산장성은 위화도 회군 지점이 보이고, 고구려의 성인 박작성이 철거되고 생긴 성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일보과’란 말이 생긴 표지석이 있는데, 일보과란 한 발자국만 이동하면 북한 땅이기 때문이다.

여순일아감옥구지에 마련해놓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억압받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체험을 통해 우리민족의 많은 유물들과, 역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역사들이 왜곡되거나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

또 우리나라가 아닌 이상 제대로 잘 복원되지도 않는 것 같다. 북한의 상황도 잘 알게 되고, 북한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진짜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느끼고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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