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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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2.
  • 이연수 곡선중
  • 승인 2017.09.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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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얼굴 그리기를 주제로 했을 때 만난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내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 나도 교환 겸 주머니에 있던 볼펜을 꺼내 슥슥슥 얼굴을 그려주었다.

비록 중간에 그 아이는 주제를 바꿔서 그림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는 완성해서 선물로 그림을 아이에게 주었다. 그림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선물로 주는 건 이래서 행복한 거구나, 하고 느꼈다. 정말 착하고 예쁜 아이였었다. 너는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다음 날, 그 초등학교에 다시 찾아가 체육대회를 했다. 사실 라오스의 초등교육 과정에는 체육시간이 없다고 한다.

굳이 체육시간이 없어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들에게는 이번 체육대회가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며 모두들 열심히 준비했다.

전날 밤 호텔에서 축구공에 바람을 열심히 불어넣고, 경품으로 줄 사탕과 여러 학용품들도 바리바리 챙겼다. 개인전 달리기 시합을 시작으로, 체육대회의 꽃인 장애물 이어달리기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뛰어놀았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언어와 생각이 달라도 모두에게 통하는 것 같다. 밀가루 속 사탕 주워먹기를 해서 온 얼굴이 밀가루 범벅이 되었지만 그렇게 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마저 재미있었다.

정리를 하며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풍선 하나로도 몇날 며칠을 깔깔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건 어느 나라를 가도 만국 공통이다.

풍선을 갖고 노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풍선을 불어서 머리가 아파도 되려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먹여주고, 옷과 학용품도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옷 나눠주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옷 취향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내 취향의 옷을 주면 ‘언니, 그건 좀 아니예요!’ 싶다는 듯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헬로키티나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귀여운 티셔츠를 주면 손을 모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 좋아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마음 같아선 더 귀여운 옷들을 많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이틀 간 시간을 보냈던 초등학교를 떠나 빈민촌에 구호물품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떠났다.

고작 이틀 뿐 인데 정은 또 빨리 들어서, 귀여운 웃음을 짓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린다.우리가 찾아간 마을은 우등생 고등학생 뿌끼 언니네 집과 대가족이 사는 집, 그리고 중학생 남매가 사는 집 세 가정이 있는 마을이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가정은 뿌끼 언니네 집이었다. 할머니와 뿌끼 언니 두 분이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환경이 많이 열악했었다.

그런데 뿌끼언니는 자기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할 정도의 수재라는 것이다.

그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도 상위권에 웃돌 정도이다. 장래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전교 백 몇 등에나 머물러 있는데... 공부를 잘 해서 너무 부러웠고, 뿌끼 언니가 꼭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언니 파이팅! 뿌끼 언니네 집에서 버스를 조금 타고 가면 대가족 집과 중학생 남매 가족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 줬다. 라오스 사람들의 웃음은 정말 따뜻한 느낌이다. 괜히 ‘천사의 나라’, ‘미소의 나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마을도 사람이 살기엔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 마을에 사는 분들은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돈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돈으로는 행복도 살 수 있어!’ 라고 말하지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다.

돈이 많으면 잠시나마 만족감은 가질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행복은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시적인 행복을 계속 구입한다고 해도 언젠간 고갈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괜히 있겠나. 방글라데시나 라오스 같은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풍요롭진 않지만 주위에 웃음이 넘치는 삶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도시 개발과 문화 개발이 꼭 필요한 걸까? 우리에게 편한 것이 그들에게도 무조건 편하리란 법은 없을 텐데... 어쨌든 그 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힘든 일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대가족 집안의 아이들은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겠지. 요즘 말로 흔히 ‘꽃길만 걷자’ 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론 라오스에 가서 봉사활동만 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 왔는데 관광이 빠지면 너무 아쉽다. 시간 상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은 어려웠기에, 가장 기억나는 것 몇 개만 적도록 하겠다.

라오스는 주위 국가인 태국이나 베트남,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에 비하면 인지도가 거의 바닥인 나라이다. 당장 내가 돌아와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 라오스 다녀왔어!’ 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반응이 ‘라오스? 거기가 어디야?’였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래서 나도 라오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채로 출발했는데, 라오스는 국민의 대부분이 종교로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라고 한다.

그래서 절이나 불상 같은 문화재가 굉장히 많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온 사방이 황금으로 장식된 사원인 탓루앙과 사원 안이 불상으로 가득한 (불상이 6천여 개 정도라고 들은 것 같다) 사원, 그리고 거대 돌부처님이 누워있는(와불상) 사원도 있었고, 불교 국가답게 어딜 가나 사원이 하나씩은 있었다.

불상이 가득한 사원에 기도를 올리는 곳에는 벽화가 있었는데, 이 벽화에 무슨 사연이 있었을지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라오어를 조금만 할 줄 알았었다면 사원을 관리하는 직원 분께 좀 여쭈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아마도 종교에 관련된 전설을 그린 게 아닐까 싶다. 또 하나 특별한 게, 라오스 사원에는 여자 모습을 한 불상도 많이 있었다는 거다.찾아보니 라오스는 예로부터 모계 사회였다고 한다. (모계 사회여도 여자들이 더 고생하는 건 똑같았다.) 이게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불상만 많이 봤던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또 불상이 야외에 있는 곳은, 불상 아래에 라오스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간 듯 놓여있는 향초와 과일, 술, 음료수도 몇 개씩 보였었다.

그래서 나도 와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왔다.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을 꼭 이루게 해 주세요.’ 하고. 물론 기도를 드리며 바친 건 없지만 라오스 부처님은 너그러운 분이니까 내 기도를 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재래시장에 놀러갔던 것도 생각이 난다.

나는 거기서 룸메이트 언니와 함께 망고스틴을 사먹었다. 1kg에 이천 원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엄청 저렴하다! 처음에 망고스틴이 뭔지 몰랐다 (망고라고 해서 망고의 한 종류인줄 알았다.) 검붉은 색의 엄지손가락 만한 투박한 덩어리가 도대체 뭐가 맛있다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먹자마자 그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괜히 과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산 망고스틴을 호텔에 두고 와버렸는데, 가지고 오지 못한 게 아직도 큰 한이다.

나중에 동남아 국가에 여행을 한 번 더 가게 된다면 목표는 시장에서 망고스틴(+a) 사먹기다. 한번 도전해 봤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더 신기했던 것은, 재래시장 정육점에는 냉장고가 없는 대신 천장에 뭔가 리본 같은 게 빙빙 돌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건 파리를 쫓는 도구라고 한다. 난 처음엔 그게 우리 고기가 이렇게 신선해요! 같은 말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인 줄 알았다.

메콩 강 주위를 따라 매일 저녁에 열리는 야시장도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

야시장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인 것 같다. 내가 옛날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몇 달에 한 번씩 야시장이 열리곤 했었는데, 그 날이 되면 동네 친구들을 데려다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인형도 사고, 금붕어도 잡고 놀았던 게 생각난다.

주홍빛 조명이 주위를 밝게 비추고, 빨강 파랑 천막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다.

어수선한 야시장을 한껏 둘러보고 나와 조용한 메콩 강 야경을 보는 것도 마음이 잠잠해지니 좋았다.

라오스의 물가는 매우 싼 편이었다. 내가 산 것 중에 가장 비싼 것이 6만 킵 정도였는데, 한화로 8천 원 정도밖에 안 하는 가격이다.

물론 내가 어리고 외국 관광객이었기에 바가지도 장난 아니게 많이 먹었다. 생각보다 흥정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마음을 조금 더 매정하게 먹을 필요가 있었다.

라오스에 다녀온 지 한 달도 넘게 지냈지만 빠뚜싸이에서 바라본 도심의 풍경, 거리마다 하나씩 있는 구멍가게,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왠지 마음의 고향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아쉬움을 느낄 바엔 거기서 지치고 더워도 좀 더 힘내서 열심히 둘러볼 걸 후회도 조금 하고 있다.

나는 16살이나 먹었고 이제는 어린애도 아니지만 여전히 어린 티는 벗지 못한 것 같다. 그때의 행동들을 둘러보니 조금 부끄러워지는 행동도 많이 저질렀던 것 같다. 이걸 고칠 필요가 있는데, 생각지 못한 상황에 무심코 나와 버리는 것들이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참 고민이다.

이번 겨울에는 캄보디아 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도 아마 동남아시아 국가일 텐데,

나는 그래도 라오스에 한 번 더 가고 싶다.

만약 내년 여름이나 겨울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이번의 기억과 경험을 잘 되살려 더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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