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그냥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만 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과 기아의 극복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장’ 이라는 윤리적 주제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를 통해 ‘아마티아 센’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69년 랑나르 프리슈와 얀 틴베르헨이 수상한 이래 노벨경제학상은 주로 영미계통의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폴 사무엘슨 등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 자체에는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거니와 경제학의 주된 영역 중 하나인 분배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이다. 인도출신으로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외면한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경제학계의 양심'이란 영예로운 별칭을 얻었다.
‘센코노믹스’의 전반을 이루는 핵심적인 근거와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저자 아마티아 센이 어릴 적 경험한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 때문이었다. 센은 9살 되던 해인 1943년, 벵골에서 벌어진 대기근을 목격했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이 참사는 어린 센을 경악과 충격 속에 내몰며 조국 인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거기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빈번히 발생하던 종교적 분쟁과 테러, 극심한 폭력들 또한 센의 사상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린 시절의 센이 겪은 비극적인 몇몇 사건들은 그에게 인간의 생존, 생활, 그리고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고 이들 위협에 맞서는 '인간 안전보장’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책은 아마티아 센이 전 세계를 돌며 각종 강연과 워크숍에서 발표했던 사례 중 기아와 빈곤,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장을 다룬 것들을 모아져 있다. 맨 처음 부분에는 옮긴이가 아마티아 센에 대해 해설해 주어 초보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있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까지도 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아시아적인 가치의 존재를 다룬 내용에서 아시아적인 가치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폭넓은 역사적 지식들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다. 센의 경제학 즉 '센코노믹스'의 핵심은 경제학에 철학과 윤리를 접목한 데 있다.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고 인간이 지닌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것만이 진정한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센은 이를 단순히 선언적이나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후생 경제학의 이론을 가지고, 수치와 자료를 가지고 분석하고 실증해 내어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센코노믹스'는 인간성이 사라진 현대경제학에 일침을 가하고 아마티아 센 스타일의 경제학 철학과 윤리적 시선을 말한다.
센코노믹스는 결과와 수치에만 집중하는 알맹이 없는 양적 성장을 경계하는 대신, ‘사람다운 삶’을 우위에 둔 양심적인 경제관점을 지향한다.
이는 인간의 행복을 반영하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며, 동시에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위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며 ‘센코노믹스’의 핵심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개념을 되짚어보면, 책 첫머리에 옯긴이의 해제에서 나온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라는 용어와 마지막장에 나오는 '인간의 안전보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란 센의 이론에 핵심개념으로서, ‘한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교환, 사용할 수 있는 구매 능력이며, 갑작스럽게 박탈된 재화의 지배 권리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개인의 구체적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소득이 줄어들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 불황이 오거나 기근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빈곤은 꼭 최하위의 빈곤층에서만 일어난 다는 것도 문제였다. 흔히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돈 있는 사람들은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하더라도 말 뿐이지 정작 그 사실을 피부로 직접 느끼는 사람들은 우리네 없는 사람들이다'는 말이 떠올랐다.
또 인타이틀먼트에 관한 설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을 떠올렸다. 비정규직은 연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고,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불황이 오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어쩌면 '88만원 세대'라는 개념도 권리박탈의 개념에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타이틀먼트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해답을 ‘민주주의’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민주주의를 통해 여러 계층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는 대기근이 오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기근이 발생한 나라는 소말리아, 북한과 같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나라들이다.
저자에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이라는 전제는 잘못됐다.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수록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어 있어야 빈곤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센은 ‘인간의 생존 , 생활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고 이들 위협에 맞서는 노력에 지원을 강화하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는데, 이 이야기는 일본 정치인 '오부치 게이조'가 말했던 인간의 안전보장이란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센은 왜 인간의 안전보장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와 적극적인 이유를 나눠 설명해 인간의 안전보장에 대해서 배울 수 있던 책이었다.
편집/ 구성 = 김리원 기자
